*산행일 : 2월 22일(일)
*누구랑 : 나홀로
*코 스 : 영축산문-관음암-보문암-무량암-축서암-영축산-백운암-비로암-극락암-반야암-서축암-
금수암-자장암-사명암-백련암-옥련암-서운암-수도암-안양암-취운암-보타암-영축산문 원점회귀
*산행거리 : 21.63Km
*산행시간 : 6시간 59분(휴식시간 포함)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 마지막날이다
어렸을적엔 새옷이나 새신발 한 켤레 얻어신을수있을 확률이 높고 맛있는 음식 마음껏 먹을수있고
잘 하면 세뱃돈도 챙길 수 있어서 설레임에 잠을 설쳤었는데 요즘은 시큰둥하다
연휴기간 마신 알콜 분해도 할겸 통도사 19암자 순례길에 나섰다
힘들었다
영축산문 앞에 도착했다
어제부터 내린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있다
비를 맞고 출발한다 하지만 내리는 양이 많지를않아 우의는 입지않고 출발한다
영축산문 앞에 자리한 안내도 오늘 둘러볼 암자19개가 표시되어있다
영축산문옆 무료 주차장엔 이른 아침이라 자리여유가많다
5분도 채 걸리지않는 거리에있는 관음암 19암자중 첫번째 방문지다
좌측길로 접어들면된다
관음암:통도사 울타리 밖에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관음기도 도량으로 30여년 전 태응스님이 창건하였다.
원래 대처승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사하촌이었으나
신도들과 함께 집과 주변의 논밭을 매입하여 현재의 암자를 조성 하였다고 전한다.
대웅전인 자광전 앞에는 석등과 돌난간을 두른 5층 사리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석탑에는 미얀마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통도사 안내문)
나갈때는 오른쪽 하천을따라가면 도로를만난다
관음암을 보고나와 지산마을로 가는길
사진의 왼쪽이 보문암이고 오른쪽이 무량암이다 얼핏 가정집처럼보인다
보문암은 통도사 안내문에는 올라와있지않고 19암자길 안내문에만 있는 암자이다
입구에 암자 표시도없으니 19암자길에 안내되어있지않으면 암자인지도 모를판이다
보문암 이웃에있는 무량암 또한 통도사 안내문에는 없고 19암자길 안내문에만있어
유래같은걸 알수가없다
절마당에 한번들어가보려고해도 입구에 심술궂은 표정으로 저렇게 떡하니 버티고있는
오리모형 나무를 보니 주인장의 뜻이 헤아려지는것 같아 미련없이 돌아서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지산리 마을버스 종점이고 축서암은 오른쪽이다
축서암:통도사의 울타리 밖에 있는 4곳의 암자(관음암,보문암,축서암,무량암)중 하나로
통도사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숙종 37년(1711)에 창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철종 14년(1863) 중수한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젘하지 않는다.
사찰 명은 영축산의 옛 이름이‘축서산’이어서 예산이름을 회상하여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은 남향으로 세워져 햇볕이 잘 듣고 주위가 평평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며,
법당과 삼성각, 요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축서암은 선화가로 유명한 수안스님이 주석하였으며,
현재는 산중원로이신 초우스님이 주석하고 있다.(통도사 안내문)
매화가 탐스럽게 피고 가지끝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모습을 보니 봄이왔음를 더 실감나게한다
축서암 사거리다
직진하면 비로암으로 가고, 좌측으로 가면 지산리,
우측으로 가면 영축산 정상으로 간다
직진해서 비로암으로 바로가서 19암자를 돌면 거리가 너무짧기에
영축산 정상을 다녀오기로하고 우측으로 간다
임도를 만나지만 임도를 따르지는않고 지름길로 간다
여름 장마철에 만나는 안개는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데 초봄의 안개는 신비감이없다
그저 시야를 가리는 성가신 존재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껍질은 세월의 무게감이 더해져 거북등 껍질 마냥 갈라져있다
취서산장이다
오랜만에왔더니 새단장을했다
궂은 날씨 탓인지 다른 등산객은 없고 주인장 부부만있다
여전히 멋진 몸매를 간직하고있는 칼이다
몇년전 취서산장 개인줄 모를때 신불산 정상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때 정상데크에 비박텐트 한동이있어서 그비박꾼과 함게온 개인줄 알았었다)
녀석이 따라와서 동행을하면서도 계속 가라고해도 무작정 따라와서
배내골까지 동행하고 헤어졌었는데
내블러그를보고 댓글을 남겨주신 사장님의 간절함이 느껴져 댓글에있는 전화번호로
통화를해서 헤어질 당시를 설명드렸었는데 찿았다고해서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지난번에 올때는 개껌을 사와서줬는데 오늘은 줄게없구나
지난번 경험을 되살려 이름도 안부르고 머리만 한번 쓰다듬어주곤 돌아나왔다
잠시잠깐 한줄기 서광이 비추는듯 하더니 금방 자취를 감추고만다
지난주 목요일 산아래에 비올때 내린 눈이 녹지않고있다
어젯밤부터 내린비에 녹아서 등산로는 개울로 변했다
동봉모습
안개로 조망은 꽝이다
영축산문에선 두시간 축서암에선 1시간30분걸려 도착한 영축산 정상
시계가 십여미터밖에 안돼 처음온 사람은 신불평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조차 못하게
안개가 진하다
통도8경이있는데 이곳 단조낙조가 포함된다
이곳 천정샘에서 비로암으로 하산하는길은 급경사 너덜지대라 비추구간임
1060 추모비봉
얼은 땅이 녹아 질퍽거려 걷기가 지랄이다
숨은재 도착해서 좌측 은수샘방향으로 접어든다
직진해서 함박등지나 함박재에서 백운암으로 가는 방법도있으나 오늘은 은수샘으로 갈예정이다
우측으로가면 청수골로 하산해진다
은수샘이다
영축산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 숨은 샘터인 은수샘
시원한 석간수 한모금 마시고 물통도 가득채우고 돌아나온다
영축산 정상에서 한시간 걸려 도착한 백운암
백운암에서 울리는 북소리인 백운명고는 통도팔경에 속한다
백운암:신라 진성여왕 6년(892) 조일스님께서 창건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 순조 10년(1810) 침허스님께서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스님께서 후원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통도사의 여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도처로 유명했으며,
특히 만공스님께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등 여러 고승스님들의 일화가 전한다.
저녁 무렵의 아름다운 경치와 절의 북소리는 예로부터 통도팔경 중 하나로 유명하다.
또한 금수라는 약수가 잘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과 산식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1804년에 조성된 백운암 지장탱이 문화재자료 제 287호로 지정되어 있다.(통도사 안내문)
금수샘 가는길을 막아놨는지 조용히 한번 둘러보고 돌아서 나온다
백운암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25여분여 걸려 도착한 비로암
비로폭포는 통도팔경에 속하는데 볼려면 은수샘 아래까지 등산해야만된다
비로암: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암자로
고려 충목왕 원년(1345) 영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선조 11년(1578) 태흠대사가 중건하였고 다시 근래 원명화상이 중수를 하였다.
비로암에는 1899년과 1904년에 조성된 아미타구품탱 ․ 독성탱 ․ 산신탱 ․ 조왕탱 들이
경남유형문화재 제 354호로 지정되어 있어 당시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법당과 더불어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 있으며,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이운 되었으나 북극전에 봉안되었다.(통도사 안내문)
비로암 인근에있는 반월교가 인상적인 극락암이다
극락암: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충혜왕 복위 5년(1344)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영조 34년 (1758)지홍대사가 중건하였고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 ․ 중수하였다.
극락암은 한암 ,월하, 벽안 ,보안, 혜암스님 비롯하여 수덕사 전 방장 원담스님,
은해사 전 조실 일타스님, 해인사 원로 도견스님, 화엄사 전 주지 도광스님 등
제방의 조실스님들이 모두 이곳에서 정진하는 등 한강 이남의 제일가는 호국선원이라 할 수 있다.
선방인 호국선원 앞에는 영월루가 있고 연수당 ․ 수세전 ․ 독성각과 함께
33조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과 함께 암자로서 매우 큰 규모이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는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와의 조화가 아름답다.(통도사 안내문)
안내문에 언급된 홍교다
영축산과 산록이 이 연못이 비친다하여 극락영지라하는데 이것또한 통도 팔경에 속한다
이곳 소나무숲은 언제봐도 일품이다
혼자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지나가는 차 소리가 거슬리면 소나무숲으로 들어가 걸어면 푹신한 느낌에 더 진한 솔향기를 느낄수있어 더 좋다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도착한 반야암
반야암: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지안스님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이 반야보전, 청향정, 세진정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내부에는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봉안 되었다.
경내에는 석조관세음보살을 비롯하여 칠층석탑과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통도사 안내문)
통도사에 딸린 넓은 들판
촌놈이라서 그런지 넓은 들판을보니 문득 통도사가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야암을 벗어나며
앞의 사진속 다리가 세심교(洗心橋)다
세속에 찌든 마음의 때는 못벗기더라도 옷에묻은 흙은 털어내자싶어
등산객을위해 설치해둔 에어건으로 대충 털어내고 19암자 순례길 후반전을 시작한다
자장암가는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서축암이다
서축암:자장암으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1996년 월하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경내에는 인법당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다(통도사 안내문)
잔디가 깔린 절마당 한켠엔 다보탑 모형이있다
서축암을 나와 금수암 가는길에서 만난 딱다구리
처음엔 나를보고 잠시 긴장하는것 같더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제 하던일 열심히 한다
이런 새무시~
금수암이다
몇년전 친구들과 함께 와보곤 처음이다
금수암:세심교를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수행도량으로써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철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사찰 입구가 나온다.
정갈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 석탑, 석등이 자리하였고
마당은 아름다운 조경수들과 잔디로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서 내부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이 봉안되어 있으며,
법당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자는 유리문으로 둘러져 있어 안에 있으면 금수암 경내 전체를 살펴 볼 수 있다.(통도사 안내문)
안내문에 나오는 팔각정이다
금수암을 보고 돌아나와 자장암으로간다
자장암 옆 계곡은 넓은 반석이 많고 아기자기한 소(沼)들이 많아 풍경이 아름다워
통도 팔경에 속하는데 자장동천이라부른다
자장암 마애불
자장암에는 유명한 금와 보살이있는데 이제껏 단 한번만 숨쉬고있는 개구리 아랫턱만보았다
개구리가 보이면 좋다고해서 정초엔 금개구리 볼려고 많은 사람들이 찿는곳이다
자장암: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수도 하던 곳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회봉대사에 의하여 중창되었다고 하며, 1963년 용복화상이 중수하였다.
법당은 암벽을 의지하여 서향하였고 그 옆에는 1896년에 조각된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있다.
법당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가 나오는데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소위 금와공이 있어 유명하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하권 승유어급현화금와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명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 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함속게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간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 말한다.
현재 자장암에는 관음전과 수세전,자장전이 위치하며,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과
영산 회상도,신중탱 등이 봉안되었다.(통도사 안내문)
구름모자를 눌러쓴 오룡산 방면
다음은 사명암으로 가야하는데 해우소앞으로해서 산으로들어 능선에 곧장 붙으면된다
능선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10여분정도 걸려 오르면 나타나는 무명봉 조망터
영축산 방면
통도사 방면
오른쪽 아래는 새로짓고있는 템플스테이 건물
무명봉에서 약20여미터 더 진행하다 만나는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하산하면
대나무 숲이 보일때쯤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가면 사명암 입구로 하산한다
무명봉 조망터에서 10분정도만에 도착한 사명암
이곳도 주차장에서 연못을 가로질러야 암자에 닿게된다
사명암: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사명대사가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으로 전해진다.
선조 6년(1573)에 사명대사를 존경한 이기․신백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사명암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과 칠성전, 해탈문등과 함께
연못과 어우러진 일승대가 한껏 운치를 더하고 있다.
사명암 감로탱을 비롯하여 1917년 조성된 석가모니후불탱과 1918년 조성된
신중탱이 성보박물관에 이운되어 보관 중이다.
또한 사명암은 통도사.수덕사.화엄사,안압지,분황사,불국사 등 전국 주요 사찰과
경복궁 향원정, 우정국 진열실, 남한산성등 우리나라 주요 건물의 단청을 담당하였던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 혜각스님이 주석하던 곳으로 현재
성보박물관에는 혜각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많은 서화류들이 기증 보관 중이다.(통도사 안내문)
오른쪽의 사명암을 보고나와 왼쪽으로가서 백련암으로간다
오른쪽의 백련암을 먼저보고 사진의 길이 아닌 다른 숲속길로해서 옥련암으로간다
이곳의 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다 썩어지고 밑둥만 조금남았다
웅장한 느낌이 드는 은행나무
백련암은 한때 사촌동생이 공부한다며 몇달을 묵었던곳이라 안면이있는 암자다
백련암: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주위에는 울창한 수림과 은행나무로 인해 더욱 운치가 있다.
백련암은 공민왕 23년(1374)월화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인조 12년(1634)현암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법당의 현판은 백련사라고 하였으며 대한제국 말기에는 남방의 선찰로써 유명하였던 곳이다.
법당과 광명전, 영월루,장경각 안심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1863년 조성된 백련암 석가모니후불탱,1864년 백련암 신중탱,1889년 백련암 지장시왕탱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성보박물관으로 이운 보관 중이다.(통도사 안내문)
백련암 절마당에서 능선길로 접어들어 옥련암 가는길에 만나는 벼락 맞은 전나무
입구 돌탑이 인상적인 옥련암
옥련암: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공민왕 23년(1374)에 쌍옥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철종 8년(1857)에 호곡 ․ 청진 두 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 전하는 이야기로 옛날 이 옥련암에 ‘장군수’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는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현재 옥련암은 법당을 비롯하여 무량수전과 요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 현대에 조성되었다.(통도사 안내문)
절마당엔 공작새 한마리가 자유로이 돌아다니고있었다
옥련암 전경
옥련암에서 조그만 언덕을 넘어서 도착한 서운암
서운암의 상징적인 장독대
부모님을 모시고와서 놀다 갈때 된장을 사간적이있었다
봄에는 야생화 곷 축제도 열린다
절마당의 분제
서운암:서운암은 수도암에서 들판을 내려와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고려 충목왕 2년(1346)충현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근래에는 성파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삼천불전과 산신각, 선원, 요사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후기에 제작된 여래불이 성보박물관 이운 보관 중이다.
또한 서운암은 고려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도자기판에 조성한 십육만 도자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어 인류의 평화와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통도사 안내문)
수도암 입구
통도사 주차장에서 자장암이나 비로암으로 가는길에있다
수도암:수도암은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마한 암자이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 이관대사가 창건하고 그 후 정신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현대에 조성된 인법당과 산식각, 요사가 자리하고 있다.(통도사 안내문)
큰길로 돌아나와 안양암으로 가는길
안양암은 입구가 두군데인데 한쪽은 통도사에서 오는곳이고 이쪽에서 가면 만나는 입구
안양암:안양암은 통도사 팔경 가운데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한 암자로
통도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안양암에 대한 구체적인 내력은 전하고 있지 않으나 ‘불종찰약사’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21년(1295)찬인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고종 2년(1865) 우담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68년 우송화상이 중수하였다.
안양은 곧 ‘극락세계’를 뜻하므로 아미타부처님을 본존으로 봉안하고 있다.
중창이 이루어진 1865년 당시 안양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북극전이 건립되었으며,
1866년 칠성탱을 봉안하고,1896년 신중탱을 조성하는 등 끊임 없은 불사가 이루어졌다.
북극전은 보상암이라고도 하며, 정면3칸,측면 2칸의 건물로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의 벽과 재에는 여래도, 화훼도,운룡도,주악비천도,연화도,용면도 등
여러 종류의 단청과 벽화가 표현되었고, 이 벽화와 별화들은 모두 북극전 건립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안양암에는 법당과 청송당, 고금당, 정토문, 독성각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안양암 아미타후불탱,안양암 북극전 칠성탱등은 성보박물관으로 이운되었다.(통도사 안내문)
안양암에서 바라보는 통도사는 안양동대라해서 통도 팔경에 속한다
이곳에서 포장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들면 취운암으로 갈수있다
소나무가 분위기있는 산길을 5분여 걸으면 도착하는 취운암
취운암:취운암은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효종 1년(1650) 우운대사가 처음 창건하였고,
정조 19년(1795)에 낙운대사가 중건 하였다, 그 후 1969년 태일화상이 다시 중수하였다.
원래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많은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 되었다.
취운암의 건물로는 주 법당을 중심으로 2층 강당과 요사, 종각 등이 있으며,
법당 뒤편으로 산신각이 있다.건물은 모두 6동 128칸에 이르는 큰 규모이다.
취운암에는 1896년 동호 ․ 진철이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기록된
통도사 취운암 지장시왕탱이 문화재 자료 제 364호로 지정되었다.(통도사 안내문)
취운암 입구
19번째로 오늘의 마지막 암자인 보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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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나가기만했었지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다
연휴 마지막날에다 오후들어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통도사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영축산문에서 통도사에 이르는 호젓한 소나무 숲길은
통도팔경중 제1경에 속하는 무풍한송길이다
예전엔 이길이 유일한 춥입구라 차량과 사람이 뒤엉켜 복잡했으나
요즘엔 양산천 건너편으로 차량 전용 길이 생기고나서부터 이길은
보행자 전용이라 호젓하고,조용하고,아름다운길이라 없던 불심까지
생길정도로 멋진길이다
일곱시간여를 걸어서 영축산문에 원점회귀했다
누가 내더러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무교인척한다
무교면 무교지 무교인척하는건 가까운 친척이 주지스님을 할 정도로 불교집안이고
나또한 일년에 한번 마누라 생신일이자 부처님 탄신일인 사월초파일날
절에가서 등을 달기때문에 사이비 불자라 제목을 순례길이라고했다
소설 화엄경의 선재처럼 깨달음의 순례길은 힘들어~~
오늘도 종아리에 통감자 한알 심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