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달밤에 만난 억새

울산 종내기2 2006. 10. 7. 14:22

달빛에 반사된 억새의 눈 부심과 한 줄기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의 출렁임이 눈 앞에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개천절 날 저녁 회사 일을 마치고 기어이 억새를 만나러 떠났다. 

 

야간 산행이라 쉬운길로 갈 요량으로 간월재 올라가는 임도 입구에

주차를 하고 후레쉬 하나 들고 출발이다.

물론 혼자서...

아니지 이런 날은 혼자가 아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길벗이 되어준다.

만월(滿月)은 아니지만 달 빛이 밝다.

3일후면 보름이자 추석이다 고향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저 달은 희망과 넉넉함을 선사 하리라.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지만

달을 벗삼아 억새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으로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평소와는 달리 속도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그저 달빛이 내어주는

길에 내 몸을 맡기며 한발 한발 내 디딜 뿐

이렇게 여유있게 하는 야간 산행은 또 다른 맛이있는 거 같아 좋다.

 

임도(林道)라서 구불구불한 S자 모양의 길 

달은 어두운 삼각봉우리 실루엣선 위에 걸려있다.

길의 반은 달빛에 노출되고 나머지 반은 산 그림자에 묻혀있다

달빛에 노출된 부분은 자갈까지도 보일 정도이고

산 그림지에 묻힌 나머지 반은 어두워도 길은 보인다.

달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길벗을 만날 요량으로 빨리 걷고...

달이 보이는 부분에서는 길벗을 만난 안도감으로 천천히 걷고

그렇게 티격 태격 걷다보니 어느새 간월재에 올라섰다.

 

정상 부분에 올라서기 직전

지금 처럼 개발 되기전에 있던 조그만 늪지대였던 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니 달빛에 드러난 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멀리 언양과 울산이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환상이다.

 

물 한 모금을 하고 조심스레 올라선 간월재

야영을 하는 팀이 있어 시끌하다.

시끄러운 소리를 피해 되도록 그 팀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서야

억새를 본다.

 

달빛을 머금은 억새는 하얀 융단처럼 빛나고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모습이 환상 그 자체다.

바람에 억새가 일렁이고

억새에 바람이 실려가고...

눈을 감고 억새꽃 우는 소리에 귀를 가져다 대본다

수런수런 무언가 내게 얘기하는 거 같다.

눈을 떠 하늘을 본다 별이 억새밭에 쏟아진다.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신다.

따뜻함에 억새의 외로운,아니 그리운 혼이 녹아드는 거 같다.

 

그렇게 한참을 넋을 잃고 억새에 취하고

가을 밤 억새들의 향연에 방해가 될까봐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조심스럽게 돌아서 왔다.

아!

깊어가는 이 가을 밤

사랑하는 이와 함께였다면 

무엇을 더 바랄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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